살며 생각하며

인생은 60부터- (부제: Active Senior)

시소대디 2022. 9. 24. 15:54

 

어떤 사람이 인생을 마감하면 우리는 이를 가리켜 '돌아가셨다'고 높여 말한다. 곱씹어 볼수록 철학적, 종교적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렇다면, 한번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탄생을 시작점으로, 그리고 '돌아가신' 그 순간을 종점으로 일생의 어딘가를 기점으로 한 일련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인 셈이며, 인생은 돌아가는 길의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말씀하신다. 20대, 30대 였던게 엊그제 같다고. 불혹에 접어든 나도 이제는 20대, 30대가 '엊그제 같았음'에 무척 공감한다. 나는 아직 여전히 20대 같은데-나는 여전히 30대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될 것 같은 그 젊음 말이다. 

 

한국 사회가 공히 '고령화'를 논하고 있다. 이제는 120세 시대라더라. 그렇다면 60은 말하자면 반환점이다. 120세에 '돌아가실' 거면 60세면 반환점을 도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60세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노인'과 '늙음'을 재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이러한 사회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앞으로 보다 더 많아질 고령 인구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던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껏 '늙는다는 것'은 쇠퇴, 저물어감을 의미했다. '황혼', '은퇴' 등의 표현으로 대변되는 60세는 사회의 주된 동력원에서 부차적인 예비동력으로 물러남을 의미했다.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단이나 교회마다 여건과 기준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70세 정도에 은퇴하고 목회와 사역 이선으로 물러났다. 문제는 이들이 여전히 사역가능하며, 여전히 심적, 영적으로 젊고, 하나님을 향한 소명의 뜨거움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몇해전에, '왜 키스 안해줘? 이웃집 50대 남에 총 발사한 할머니'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을 다룬 기사가 있었다. 사건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사가 보도한 요는 90대의 할머니가 키스(라고 써있긴 하지만 서양인들 사이에서 건네는 흔하고 가벼운 스킨십 정도라고 이해된다)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을 쐈다는 것이었다. 기사의 제목과 내용은 마치 90대의 정열적인 할머니가 연정으로 벌인 치정 사건인 것처럼 이해될 소지가 있었지만 사건의 본질은 그게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여튼, 그 기사의 댓글에 댓글시인 제페토의 시가 한편 달려 있었다.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 뜬 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리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지만,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맛본 경험으로서도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 이해된다. 난 아직 할 일이 많은데, 할 수 있는데, 난 자식 며느리의 애들이나 돌보아주는 잉여, 대체인력이 아닌데,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데.

 

그래서 50,60대로 이루어진 밴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목회경험 내내 젊은이들을 상대했건만, 막상 함께 교회를 이루어갈 이들을 찾아나서보니, 젊은이들은 알아서 자신들의 관심사와 커리어를 채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50,60대들은 혈기 왕성한 아랫세대에 밀려, 권위주의로 찍어누르는 윗 세대에 막혀 어디에도 설 곳이 없었다. 포크 음악을 듣고, 양희은과 김광석, 송골매와 들국화를 부르며 격동의 80년대를 보냈지만 그 한을 노래할 출구가 없는 세대, 그들도 노래하고 세워질 무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과 맺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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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질 교회로서 이런 저런 고민과 걱정이 많다. 

이런 말을 뽄새 좋게 내뱉는 나 역시도 사실은 아직 젊고, 내 시선은 편향적이어서 이런 고민을 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런 고민을 했다는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 젊은이들을 위한 교회여서만은 안된다. 노인들만을 위한 교회여서도 안된다. 세대와 세대가 만나는 교회, 연결되어지는 교회여야 한다. 모두가 경로우대하듯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 시선에 저항하고픈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을 생각하며, "인생은 60부터, 수업은 종 치고부터"라며 쉬는 시간 종이 울려도 진도를 빼시던 중학교 1학년 시절 국어선생님을 새삼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