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교회의 이름을 정했습니다. 아니, 본래대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시소대디 2022. 11. 1. 11:43

개척을 꿈꾸면서, 교회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무겁고, 벅차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한번 정해지면 쉽게 바꿀 수 없는 이름.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도 거듭거듭 고민하며 기도했고, 하나님의 음성이라 여겨지는 확신 가운데서 출생신고까지 마쳤었드랬다. 그렇게 두번의 화려한(?) 작명 경력을 가진, 나름 어휘력에 자신감이 있던 내게 이제는 교회이름을 결정해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 왔다.

사실, 처음부터 마음에 꽂혔던 이름이 하나 있었다. 중의적이고도 신박한(?) 이름, 한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는 이름, 딱 내 취향인 이름인데, 이 이름을 들은 모두가 나를 말렸다. 아내까지도. 그래서 마음을 돌이켜 몇 수 양보한 이름이 이 블로그의 현재 이름이기도한, '살아가는교회'이다. 무언가 아쉽지만, 그나마 나의 보잘것 없는 목회철학을 아쉽게 반영한 이름이라 하겠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의 목회철학은 요컨대 예배와 삶의 일원화이다. 길지 않은 내 인생 가운데, 특별히 신앙의 여정 가운데 가히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소위 '예배사역'이라고 하는 일에 몰두했고, 작은 몸부림의 결과로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경험의 현장에서 나는 2% 모자란 목마름을 느꼈다. 그것은 천관웅 목사님의 뉴사운드교회 개척 이유와 같은 것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매주 뜨거운 예배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오늘과 다른 내일을 다짐한다. 그러고는 문 밖을 나서면서부터 그들은 '과연 방금전까지 눈물 흘리던 이들이 맞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빠른 속도로 냉랭해진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뿐만 아니라, 가장 열정적인 모습으로 예배하던 이가 불신자만도 못한 매너를 보일 때, 소위 '싸가지'라고 부를만한 인격적 완성이 되어있지 않은(그럴 의지조차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볼 때, 분노가 아닌 아픔과 책임감을 느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배시간에 방언하는 임재 못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상식의 믿음일진대. 우리의 롤모델이 될 것은, '예배당'이라고 이름한 두터운 콘크리트 벽 안에서 모든 걸 부술 기세로 의기양양한 돈키호테가 아니라 집창촌과 룸싸롱, 저잣거리에서 접대부들과 노숙인들, 부패한 세금징수원에게 복음을 전하셨던 예수님이어야 할텐데. 그렇게 삶은 예배가 되고, 예배는 삶이 되고, 삶은 교회가 되고 교회는 삶이 되어야 할텐데.

'살아가는교회'로 이름을 결정하고 '그게 뭐야~ 이상해~'라며 초딩답게 반론을 펴는 시소들에게 '이거 아니었으면 삶은 교회 될 뻔 했어~ 보글보글~'이라고 했더니 막 웃는다. 그러고는 한동안 정말 '살아가는교회'로 마음을 정했다. 공적으로 사용할 구글 지메일 계정도 생성하고, '살아간다'는 말이 가장 잘 표현된 영어 문장이 무엇일까 고민도 하고 결정도 했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이미 '살아가는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강화도에 있기도 했고, 앞으로 점차 더 많아질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반갑고 감사한 일이지만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다시 고민했다. 정말 내게 주신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원점에서 다시 출발했다. 다시 '삶은교회'라는 이름을 마음에 품자, 아이디어가 샘솟고, 처음 받은 마음이 불타올랐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이전에는 거기까지 생각지 못했었는데- '삶'이라는 글자가 문득 '사람'이라는 단어의 세로쓰기로 보였다.
"사람은 교회입니다. 삶은 교회입니다."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불타는 마음을 그대로 아내에게 쏟아놓았고, 아내는 내가 받은 마음의 진정성을 느꼈는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삶은교회'가 되었다.
.
.
.
아차, 아이들과 상의하는 것을 깜빡했다!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어도, 이 영광스러운 사역의 과정에 동참시키고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도 미주알고주알 나누며 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문제를 상의없이 결정하다니! ㅠㅠ 나중에 알게된 시우가 '가족회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진 서운해했다. 여차저차 진땀을 빼며 달래는데, 아무래도 상의가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름 자체가 영 맘에 안드는 모양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받은 마음인 것을! ^^;; 결국 맛있는거 사주는거로 극적인(?) 타협을 보았다.


삶으로 교회가 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예배는 삶으로 완성되고, 삶은 사람을 정의한다."
우리의 삶은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형제가 자원하여 디자인해준, 교회로고의 초안입니다. 많이 수정되겠지만, 이 작은 사진 한장에 담긴 헌신된 한 형제의 사랑과 정성, 스토리가 절 겸손하게 하기에 기억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남겨봅니다. 고마워, 신재씨!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