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우산을 사다-

시소대디 2022. 9. 1. 10:25

(본문과 관계없는 동영상임- 또라미 우정출연 ㄱㅅ)

편의점에서 우산을, 무려 6천원짜리 우산을 돈을 지불하고 샀다.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매매, 거래 행위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내게는 참 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한동안 우산을 살 일도, 쓸 일도 없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한동안은 우산을 사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스태프로만 근 10여년을 보내다보니 비오는 날이면 분실물 우산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잘 보관해두고서 다음에 찾아가면 좋으련만, 아쉬울 것 없는 세상이어서인지, 두번 방문하지 않는 이의 것이어서인지, 한두달, 1-2년은 우습게 방치되는 우산이 부지기수였다. 예기치 않은 일기에 만만한 우산 하나 급히 주워쓰다보니 그렇게 쌓인 우산이 많아 굳이 우산을 사지 않아도 괜찮았다.

한동안은 우산을 쓸 일조차 없었다. 지하주차장에서 건물에 방문해서 지하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다보니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신발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는 생활(물론 그러진 못했지만)이 가능했다. 참 편하고 쾌적했다.

이런 내가 우산을 사야만 했다. 우산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분에 넘치도록 많은 혜택 속에 살던 것이 눈에 보였다. 내 소유의 자동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편히 사용할 수 있었던 공용 자동차, 관심없이 버려지고 방치되어 아직은 쓸모있는 것 한두개쯤 건질 수 있었던 스태프라는 명찰과 권한, 비 안 맞고 차에 타고 비 안 맞고 귀가할 수 있었던 생활 반경과 패턴, 그리고 그 만남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던 이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감사했고, 감사해야 마땅한 일들이었음을.
그래도 무뎌지지 않겠노라고 늘 다짐했건만 이렇게 실감나니 참 감사한 지난 10년이었다.

이제 우산을 필요로 해서 내 돈을 주고 구매하는 이들의 총총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우산이 왜 이렇게 비싸?' '우산은 왜 이렇게 쉽게 찢어지지?' '아차, 우산 놓고 왔다!' 온 집안을 다 뒤져서야 간신히 한 자루 나오는 멀쩡한 우산이 어찌 그리 반가운지. 저들에게도 그 우산이 그리 귀했겠지. 유독 처리하기 곤란했던 '폐품' 우산이, 그 주인에게는 얼마나 귀한 것이었을지. 그간 내가 -마치 내가 유명연예인이라도 된 양- '소 닭 보듯' 그냥 지나쳤던, 상대하기 곤란해서 얼른 가주기를 바랐던 그 간절한 눈빛들이 주님 눈에 얼마나 귀한 영혼들이었을지..

어제 난 우산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