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교회 개척기

예배는 삶으로 완성되고, 삶은 사람을 정의한다.

살며 생각하며

개척을 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은혜가 있다더니...

시소대디 2022. 12. 6. 23:01

선배님들 말씀에, '개척을 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은혜가 있다'고 했다. 예전엔 이 말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들었는데, 으레 어른들의 철지난 무용담, '라떼'의 일종으로만 들었는데 이제 막 개척한다고 설치고 다니기 시작하니 저게 정말 얼마나 깊은 내공이 베인 말인지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저 한 줄 문장을 후배에게 간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를 생각해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할 지경이다. 이 천방지축 혈기왕성한 젊은 목사도 이제 막 그런 은혜를 누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기까지 하고, 얼마나 더 큰 은혜를 예비하고 계실지 든든히 기대되는 마음까지 든다. ^^

홍당무는 하나님의 선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아나바다를 실천하는 지구 사랑의 알파와 오메가, 홍당무마켓이 있다. 연초에 가족들이 먼저 세종에 내려갈 때에도 이 홍당무마켓의 은혜를 크게(?) 입었던 탓에, 본격적으로 예배당에 입주할 준비를 할 요량으로 홍당무마켓에 접속하는 빈도가 늘었다. 여담이지만, 홍당무마켓에서 느껴지는 마곡과 세종 이 두 도시의 온도차는 매우 크다. 빈부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나 문화의 차이로 여겨지는 묘한 문화적 이질감이 이 앱 안에서 '두 도시가 정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구나'를 느끼게 한다. 때문에 두 도시를 모두 관심지역으로 설정해두고 올라오는 매물을 살펴보는 재미도 의외로 쏠쏠하다.

여튼, 이곳을 통해 관심있고 필요한 물건들을 찾던 중에 교회에서가 아닌 집에서 필요한 사이즈의 장농을 무료로 나눔한다는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눔 받기로 하고 약속장소로 갔는데 장농크기가 엘베보다 커서 엘베로 나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차피 나눔해주시는 것이니, 우리만 오케이하고 뒷감당을 하면 분해해서 가져가도 되는 상황. 나는 개인적으로 가구는 한번 조립하고 나면 다시 분해 및 재조립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분해하는 일은 최대한 피하려 했는데 엘베에 들어가질 않으니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이 분해하는 작업을 나눔해주시는 분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 분은 이제 막 이사온 연유로 짐도 덜 풀었고, 때문에 이리 저리 어질러진 집을 민망해 하기도 하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하다가 미처 풀지 못한 짐들 중에 처분하려는 듯이 문 밖에 내놓으신, 아직 이사박스에 담겨있는 조립식 데크 블럭 한 상자를 보았다. 혹시 이것도 중고로 처분하시려나 싶어서, 그렇다면 마침 우리 교회에 테라스로 쓸 공간에 설치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에 '혹시 이것도 판매하시나요?'하고 여쭸지만 아니라고 하셨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면서 뻘쭘하니 너스레도 떨기도 하고... 그러다 너무 편해진 탓에 내가 목사라는 것과 개척을 목전에 두고 이사를 갔다는 것까지 나누게 되었다. 참 대화하기 편하게 해주시는 탓에, 사람을 대하기를 어려워하지 않으시는 성품이신 듯한 탓에 편한 마음으로 수월하게 작업을 마치고 짐을 날라 싣는 것까지 도와주셨다. 도중에 아내분도 오셨고, 손을 보태주셔서 모두 나르고 인사드리며 떠나려는 찰나, 무언가 두분이서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스치듯 대화했던 데크를 그냥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랍고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정말 소름이 돋았다. 알고보니 아내분의 아버님도 개척하신 경험이 있는 목회자이셨고, 누구보다 그 어려움과 막막함을 잘 알고 계시기에 스치듯 이야기한 짤막한 대화중에도 우리의 필요를 캐치하신 것이었다.

정말,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것은 필요한 물건을 거저 얻었다는 싸구려 즐거움이 아니다.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는 말은 모자란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다. 단순히 '내가 필요한 물건을 하나님이 공짜로 주셨어!'가 아니라, 개척멤버라고 부를만한 번듯한 사람 한명 없는 지금, 그 때문에 때때로, 아니 너무도 자주 '정말 우리가 개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라는 질문으로 위장한 불신과 의심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려하는 요즘 '걱정마! 내가 다 준비하고 있어! 너희 가정은 내가 기뻐하는 일을 하고 있단다!'라고 하나님이 크게 외치시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나누고 싶어서 얼른 사진부터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블로거가 된다...)


사람은 교회, 삶은 교회라 했던가.
때문에 플로잉해주시는 부부의 성함을 여쭸다. 자녀들의 이름까지. 그저 '기도해주세요' 라는 겸손한 부탁에, '도울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라는 진솔한 고백 앞에, '네! 기도하겠습니다'가 공수표가 되게 하기 싫어서 초면에 실례인줄 알면서도, 요즘 분위기에 오버스럽다는걸 알면서도 감히 자녀들까지 네 가족의 이름을 여쭸다. 그리고 그 이름을 기록해두었다. 이제 내 진지한 중보기도 안에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일면식도 없는 개척교회 목사 부부에게 선뜻 흘려보내주신 가정의 네 가족 이름이 늘 있게되리라. 하나님, 축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