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성하다는 한가위.
어렵다, 고물가다,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명절이 소중한가보다. 이번에는 특히, 3년만에 고속도로 통행료가 다시 무료화 되면서 귀성길을 재촉했다. 그간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 못했던 한(?)을 풀듯, 각종 매체들은 천만대 가량이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 인구 수와, 운전할 수 있는 연령대, 한 차량에 탑승한 인원 수 등을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얼추 거의 전국민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에 산지 10년이 되었지만, 고속도로에 서 있는 귀성행렬을 찐으로 경험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정말 피크 시간의 귀성행렬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사람 참 많다.'
이전에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반이 여자-반대로는 세상의 절반은 남자-라는데, 교회당을 들여다 보면 남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교인들을 만날 수 있다. 남자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중딩, 고딩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주일아침 11시에, 중고딩은 다 어디에 있을까?
예전에 블루칩 탑리더 시절, 블루칩 남자 셀리더 모임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가 흐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당시 셀원이었던 찬영이가 두번 생각도 안하고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PC방에 가있죠!' 순간 멍해졌다. 그렇다. 주일아침 11시에 중고딩은 교회가 아니라 PC방에 있다. 정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가본 PC방에는 정말로 중고등학생 남자아이들이 버글버글했다. '교회'에 아이들이 없는 것이었지 PC방은 성업중이었다(코로나 전).
잠시 다른 이야기로 가서, 교회에서는 울 일이 많이 있다. 감정적인 위로를 받고, 정서적인 카타르시스를 얻을 기회가 많다. 일부러 노렸든,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감정과 정서가 찾아왔든 어쨌든 우리는 '예배'라고 이름한 순서 중에 눈물을 흘려도 민망하지 않을 순간과 장소가 있다. 울어도 괜찮은 때가 있고, 그 시간들에 충실하다보면 정신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 전에 스트레스를 털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소위 '불신자'라는 우리의 남편들, 내 또래의 남자들은 울 수 있을까? 어디에서 울 수 있을까? 그들의 가족들 앞에서? 아니면 친구들 앞에서? 그들은 울 수가 없어서 취기라는 핑계를 대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방패를 들고는 한번 서럽게 운다. 그리고는 다시 가족들 앞에 가서 슈퍼맨이 된다.
이야기가 이쯤되면,
그리스도인으로써 전도하겠다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의 나는 콘크리트 옹벽으로 사면이 둘러싸인 '교회'라는 거룩한 철옹성에서 세상과 단절된 성스러움으로 치장하고 살았다. 많은 이들이 내게 '목사님은 바쁘시니까'라는 진심의 배려를 이유로 자신이 뱉어내어 마땅한 삶의 독을 되삼켰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외면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이곳에서 진심으로 찾는 이를 찾아나서는 마당에 못 갈 곳이 어디에 있으며 성과 속이 무엇으로 구별될까 싶다. 성스러운 사람으로 속되다 일컫는 곳에 거룩한 목적으로 찾아간다면 속되다 말하는 곳이 거룩하게 되는, 성경에서나보던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오늘도 소망하며 기대해본다. 부디 내가 그 큰 도전을 감당할 수 있을만한 내공과 깊이가 있는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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